나의 이야기

편지쓰기대회 출품작/아버지

파도소리, 2011. 11. 7. 21:12

아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앞서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잊고 살다가, 새삼 아버지가 그리운 것은 정녕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아버지!

아들 둘을 머나 먼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시고 그래도 남은 귀한 너희 남매가 있어 행복하셨다는 우리아버지. 언니를 낳은 지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가 4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나를 임신하신 어머니 때문에 단골무당에게 점을 보셨지요. 틀림없이 아들일 거라고 하자 기분이 좋아서 어머니의 진통이 시작된 날 수산5일장에 가셨지요. 미역을 사고 막걸리도 거나하게 한잔 드시고 집에 오셨는데 낳고 보니 딸이라는 소리에 섭섭함을 못 이겨 미역을 비가 오는 마당에 던져 버리셨다는 아버지, 정말 섭섭하셨습니까.


아버지!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에서 학부형을 모시던 날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머니가 오시는데 저만 아버지가 오셨지요.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유난히도 훌쩍하게 키가 크셨습니다. 저를 보시고 윤희야 하고 불러주시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눈이 선합니다.


아버지!

그때 친구들이 놀렸던 것을 아세요.

경상도 말로 “윤희 니 아부지 키 크데. 와! 키다리다!”라고 놀리면 “와! 이 머시마야. 키 크면 어때서!”라고 눈에 쌍심지를 켜곤 했지요.  아버지의 큰 키가 놀림감도 됐던 초등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큰 키가 자랑스럽고 좋기만 합니다. 저도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외할아버지 덕에 손자도 180cm가 넘고 손녀도 170cm가 넘습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이 귀한 것을 물려 주셔서 너무 감사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을 어디 글로써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해가 져서 어둑해지면 등잔불 밑에서 “윤희야 등 좀 긁어주렴.”하시면 저는 맨손으로 아버지의 등을 긁어 드렸습니다. 하얀 비듬이 왜 그렇게 나오든지 지금 생각하면 혹시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버지께서 시원하다고 하신 한마디에 손톱 끝이 하얗게 되도록 긁어 드렸지요. 지금은 그 넓은 아버지의 등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어릴 적에 제가 맡은 일은 학교에 다녀와서 소를 몰고 다니는 일이었지요. 풀이 많이 있는 곳이면 들로 산으로 소를 몰고 가 풀을 먹였습니다. 그 동안 나는 꼴을 베고 소의 배가 볼록해지면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윤희 밥 값 했다.” 하시면서 윤희 시집갈 때 황소 한 마리는 해 줘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셨지요.


아버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고 기관지가 나빠서 고생하시다 제가 시집가기 전에 먼저 하늘나라에 가셨지요. 시집가던 날 아버지가 계셔야 할 그 자리는 텅 비워 있었지요. 왜 그렇게 허전하고 눈물이 나던지. 작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 입장할 때 혹시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도 이 모습을 보시고 눈물 흘리지 않으셨는지요. 이제 걱정 마세요. 나를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신랑이 있고 신랑보다 큰 귀여운 아들딸이 있습니다.


아버지! 

이번 기일은 주말이라 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우리선산 중턱에 있는 감나무 아래서 쉬고 계신 아버지를 보러 갑니다. 이번에는 외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당신의 손자와 손녀에게 키 크고 미남이신 아버지의 사진이라도 가지고 와서 보여 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외할아버지 멋지고 잘 생기셨지.”라고 말하면 아들과 딸이 어떻게 대답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아버지! 

며칠 후에 만나 뵐게요.

그동안이라도 편히 쉬고 계세요

       

                                     2011.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