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치 않게 살아온 나를 간단히 소개 해야 할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서 저도 나름대로 소개를 해 봅니다
고향은 전남 장흥 원도리 미나리골 입니다.
아주 시골촌 동내 한양에서도 천리길 한마디로 전라도 촌놈이죠
10대에 마산 부산 서울로 상경하여 이것 저것 하다가 고생과 설움이 너무 많아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 시절 그래도 추억에 한 페이지 이니까 고이 간직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차서 그래도 국방부에서 초청장이 왔는데 내가 너무 내성적 성격이라
내 나름데로 성격을 바꿔 볼려고 특별하게 인내와 단련된 깡다구 배우기 위하여
대한민국 해병대에 지원입대 하게 됩니다
전역 후 그 결과 진짜 성격이 많이 개조되여 외성적 바꿔서 사회생활에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3년후 제대하고 보니 세상에 보는 눈이 있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될것 같아서
현대건설직훈에 들어가 훈련 6개월받고 삼천포 화력발전소 현장에서 기술을 연마하여
현대중공업 임용시험 쳐서 그래도 큰공장 울산 현대중공업 배관기술자으로 들어가서 일하다가
그 시기에 결혼도 했고 하고 뜻 한바가 있어 84년 현대건설 이라크현장에서 한1년 근무도 했습니다.
그때는 중동에서 일하는 시간이 아침6시부터 오후10까지 일하는 시간이고
점심먹고 오침하고 현장 나가면 온도계는 40도 이상 올라갈 눈금이 멈처있고
죽도록 일하는 시간밖에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월급이 많은것 같아요
이란 이라크 전쟁시기에 포탄 소리가 자장가로 들리던 그 전쟁터 에서 가족만을 생각하며
무사하게 고국으로 돌아 갈수 있도록 처음으로 현장 교회에서 기도 하던 그때가 생각 납니다
귀국특별기가 와서 무사히 귀국 할수 있었습니다.
그때 월급이 국내보다 약3배 정도 된걸로 기억 합니다.
큰돈 모아서 지금 말하면 주공아파트 3채값 돈좀 벌어 습니다
사장님 될려고 고향에 내려가 뭐좀 시작해서 지금 말하면 사업해서 1년만에 쫄딱 말아먹고
땡푼없이 다시 부산에 상경하여 배운게 배관이라 그냥 이현장 저현장 허망한 세월을 살던중 ~~~~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지만 경찰공무원 되여 당당하게 술 사주는 친구가 너무 부러워서
가방끈이 짧은 나도 공무원을 할수 있을까? 하닌까 친구가 너 진짜 공부 잘했잔어 ~~할수있어
지금이라도 해봐 하는 그 깨복 친구가 너 머리가 있어서 할수 있어 ~~해병대 끈기가 있잔아
용기를 주던 그 김종성 친구 보고싶다 그래서 우리형님의 추천과 용기로 시작하여 30대중반에
고졸 검정고시 통과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근무한지 한 30년 다 되여 갑니다.
친구야! 나 잘살고 있다. 그 친구는 가끔 꿈속에서 만나서 잘 살고 있어 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농촌 한가로운 마을에 우체국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정년은1년 남았지만 연금문제등 분위기는 명예퇴직으로 가는 분위기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끝까지 버티고 가려고 합니다.
시골촌 집에서 6km 되는 거리를 초딩시절에 자기 키보다 크고 무거운 집 가마니 나무(솔방울) 가득넣고
새끼로 멜빵 메고 땀을 뻘뻘 흘리고 집에오면 오늘도 밥값 했다는 부모님의 칭찬에 어깨가 빨갛게
멍든 다음날도 가고 또가고 했던 장흥 원도리 미나리 장시 아들 촌넘이 이정도면 만족 해야지요 ㅎ ㅎ ㅎ
지금부터 제2인생을 준비 하고있구요
낚시나 등산을 즐기면서 체력을 기르고 있습니다.
시골살이가 그리운 것은 고생으로 먹고살았던 추억 입니다
도시놈이 다 되여 있는데 할수있을려나 걱정 입니다
건강과 체력이 있어야 모든게 가능 한것 같아요
지금까지 앞만보고 달려 왔는데 옆이 허전 한것은 왜 일까요
앞만보고 살다보니 고향친구도 멀어지고 이제라도 친구도 열심히 사귀고
누가 밥먹자고 불러주면 무조건 가야지요 이유 대고 가지 않으면 다음에는 불러주지 안는게 현실 입니다
앞으로 친구들과 젊은 중년의 작은 행복느끼며 보람있게 살겠습니다.
군사우체국장 청선 김종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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